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코모 카사노바 (문단 편집) === 베네치아 탈옥건에 관해 === '[[탄식의 다리]]' 부분에도 나와있지만 카사노바는 베네치아의 감옥에서 탈옥한 적이 있다. 문제는 알고 보면 그냥 평범한 탈옥에 불과한 이 탈옥 이야기가 자꾸 극적으로 변모한다는 것. 보통 "탄식의 다리를 건너 감옥에 갇힌 사람 중 유일하게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카사노바이며, 여자들의 도움을 받아 탈옥할 수 있었고, 탈옥에 성공한 카사노바는 '나는 여자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자유를 더 사랑했다.'라는 말을 남겼다"라는 식의 낭만적인 이야기로 알려졌는데, 위 일화는 거의 사실이 아니다. 일단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거의 없다거나 심지어는 카사노바가 유일하다는 것부터가 사실이 아니다. 당장 카사노바 자서전만 봐도, 카사노바와 탈옥 동기인 가톨릭 수사(修士)가 한 명 있고, 카사노바의 탈옥 당시 함께 탈옥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무서워 동참하지 못했던 늙은 귀족이 카사노바의 성공에 자극받아 수년 후 몇 명의 동료와 함께 탈옥을 시도해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즉, 수년 사이에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적어도 대여섯 명은 되는 것. 그리고 카사노바의 이미지 때문인지 여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탈옥했다는 이야기가 끊임 없이 나오지만 이 부분 역시 확실히 사실과 다르다. 카사노바가 아예 자서전에 자신의 탈옥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놓았는데, 일단 간수를 매수해 감시를 허술하게 만든 틈에 감방에서 빠져나와 간수들이 순찰하는 구역의 사각을 노리고 지붕과 성벽 위를 걸어서[* 당연히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떨어져 죽거나 크게 다칠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긴 했다.] 탈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탈옥이 왜 이렇게 쉬웠느냐는 것이 문제인데, 현재 카사노바의 재판기록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없고 자서전에도 탈옥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것과는 달리 재판과 투옥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모호한 부분이 많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카사노바가 갇혀있던 감옥이 두칼레 궁전 옆의 그 감옥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설이 정설이다. 일단 당시 두칼레 궁전에서 10인 위원회 재판을 거쳐 탄식의 다리를 건너 투옥되는 것은 주로 국사범이나 정치범들이 밟던 수순인데, 단순 형사범으로 처벌받은 카사노바가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은 낮다. 또한 카사노바가 상세히 기록한 탈옥 과정을 보더라도,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 한가운데의 감옥 지붕 위를 걸어서 탈출한다"는 방법은 남의 눈에 띄기 쉬우니 성공 가능성이 몹시 낮다. 탈옥 직후 멀리 탈출하기 위해 역참에서 마차를 탔다는 설명을 보더라도 석호지대 내에 있는 두칼레 궁 옆 감옥이 아니라 내륙지대에 있는 교외의 감옥에서 탈옥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크다. 결국 '탄식의 다리를 건너는 카사노바'라는 극적 이미지와 실제 상황은 달랐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당시 카사노바가 투옥된 죄목 자체가 풍기문란죄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에 베네치아 공화국 정부 입장에서도 철저히 감시해야 하는 국사범이나 흉악범과는 달리 감옥에 갇혀 있든 해외로 도주하든 국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건[* 탈옥하고 나서도 베네치아 공화국 영내에 머무르지는 못 할 테니까.] 마찬가지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 역시 가능하다.[* 유럽에서도 국사범이나 흉악범이 아닌 잡법들의 탈옥은 은근히 냅두는 분위기였다. 베네치아 입장에서도 카사노바가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국민이라서 출소 후에도 베네치아에 계속 거주하면서 노동력과 세금을 제공하며 인구를 늘려줄 것도 아닌데 집에 넣어서 밥 먹여주는 것은 손해인 것이다.] 탈옥하면서 카사노바가 남겼다는 편지의 내용 역시 위 내용과는 다르다. 간단히 요약하면 '''간수에게 죄수를 감시할 의무가 있다면 죄수에게는 자유를 갈망할 권리가 있다. 이 탈옥으로 자신이 도덕과 법, 국가에 대한 신의와 충성을 저버리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을 억누를 수 없기에 탈옥을 결행하겠다. 물론 이러다 잡히면 더욱 비참한 신세가 되어 자비를 구걸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 정도 되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를 원한다는 점에서는 카사노바다운 편지고 "나는 여자들을 사랑했지만 자유를 더 사랑했다"가 좀 생뚱맞으면서 허세 쩌는 데 비해 자조와 풍자가 담겨있으면서도 자유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카사노비스트들에게서 가장 카사노바다운 편지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카사노바에게 도덕이란 철저하게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즉 나쁜 짓은 옳지 못하니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걸리면 벌을 받으니까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따라서 들켜서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 따라서 감옥 간수의 의무와 탈옥의 권리를 같은 선상에 두고 "네가 네 일 하듯이 나는 내 일 하는 것 뿐이다" 라고 뻔뻔하게 비교하는 이 편지가 그런 카사노바의 윤리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